4년간 업무용으로 사용해 왔던 로지텍 k480을 당근에 한번 내어놓아보기로 했다. 2만원이 넘게 주고 샀던 걸 5천원에 내어 놓았는데, 몇일이 지나도 사가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누가 3,000원을 제안하길래 수락해 줬는데도 가져가지 않았다. 굴욕적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 키보드는 나와 운명을 같이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근에서 실수로 산 Asus F200MA와 한 쌍을 이루어 같이 쓰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키보드를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그간 키보드 위에서 과자 먹고, 커피 흘리고 했던 것들을 알기에... 한번 청소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나와 함께할 키보드기 때문에 막 다루기로 했다. 집에 키캡 리무버가 없어 커터칼로 키캡을 빼보았다. 상처가 나도, 상처가 나지 않아도 이미 똥값이기에 마음이 너무 편했다.
키캡을 분해하자 아래쪽에 좁고 깊은 공간이 보였다. 이 곳에 4년간 내가 흘린 커피와 땀들이 모두 들어가 있으리라. 키보드를 뒤집자 마자 뛰쳐나오는 녀석들을 모두 닦아내고 싱크대에 가서 한번 털었다. 그래도 찌들었는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남은 방법은 분해 세척 뿐이었다.
K480의 뒷판에 총 5개의 나사가 있다. 이 나사들을 분해하면, 마치 노트북처럼 하판을 따서 분해해야 한다.
하판과 상판 사이의 공간을 벌려 부드러운 것을 넣어서 따주면 된다. 보통 기타 피크를 이용하는데, 내 키보드보다 기타 피크가 더 비쌀 것 같아서 그냥 자를 이용했다. 키보드의 보이지 않는 곳이 약간 손상되었지만 기분은 괜찮았다.
하판을 분리한 뒤, 스위칭 노브의 캡도 분리해주었다.
그리고 뒤집어보면 나사가 엄청나게 많이 박혀있는데, 모두 제거해주면 된다. 참고로 나사의 길이가 다른 것들도 있다. 구분하기 쉬우니 조금만 눈여겨 보면 된다. 키보드가 왜 이렇게 무겁나 했는데 하판이 모두 금속이었다. 금속을 들어내자 안쪽 보드와 실리콘 캡이 드러났다. 이제 목욕할 시간!
상판을 물에 넣고 우리 엄마가 버리는 칫솔을 이용해 키캡 구멍 하나하나 닦아주었다. 키캡 골이 워낙 깊어 꼼꼼하게 닦지 않으면 이물질이 잘 제거되지 않았다. 이렇게 다섯번을 넘게 씻었다.
키캡은 소다를 이용해서 씻는다는데 소다가 없었다. 그냥 있는대로 반찬통에 담아서 바디 워시를 붓고 쌀 씻듯이 흔들어주었다. 마지막에는 물에 헹군 뒤 수건으로 말렸다. 부순 라면에 스프를 묻히듯 키캡을 수건 안에 넣고 마구 흔들었더니 물이 모두 빠졌다. 이제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다.
실리콘 돔이 부드럽다 보니 키보드 흔들림에 따라 움직일 수가 있어서 이를 잡아주는 구조물이 있었다. 먼저 상판에 맞게 실리콘을 올린 뒤, 작은 고정 부품이 있는 곳을 꾹 눌러주면 실리콘 안쪽으로 부품이 끼워지는 것이 눈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리콘에 회로를 잘 맞춰서 올려준 후, 하판의 금속을 덮어준다. 마지막으로 나사를 조여주면 끝이다. 참고로 분해하다가 나온 와셔(동그란 링)는 건전지 옆에 있는 회로 접지에 쓰이는 나사에 끼우면 된다.
이제 깨끗해진 키보드 상판에 키를 끼우기만 하면 끝이다. 처음에 찍어두었던 사진을 보고 키를 모두 끼워보았다.
이렇게 로지텍 K480의 키보드 청소가 끝났다. 아기를 재우면서 동시에 하다보니 모두 다 하는데 2시간은 족히 걸린 듯 하다. 그래도 키보드를 분해하면서 3,000원치의 값어치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배운 듯 하여 뿌듯하다.
K480 키보드를 쓰면서 키감이 별로 좋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리고 키를 칠 때 소음이 기계식 키보드보다 더 큰 편이라서 어떻게든 소음이라도 한번 잡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 키보드를 분해하면서 상판, 하판의 많은 공간들을 보며 그 생각을 접게 되었다. 어찌보면 k480은 타악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키보드 청소보다는 그냥 나눔을 하고 새로사길 바란다. 혹은 가격 때문에 K480을 고민중이라면 그냥 고민할 것 없이 K380을 사길 추천한다.
어쨌든 우리 k480이는 이제 나랑 영원히 가는거다? 그럼 끝.